《무셰트》, 로베르 브레송

Robert Bresson《Mouchette》(1967)

혼자서 영화를 보러갔다. 아직 날씨가 쌀쌀했던 3월 초의 종로. 보았던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였다.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의 소설《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Nouvelle histoire de Mouchette)》를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건 이제야 알았다. 영화는 잔잔히 흘렀다. 무성영화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설명이 잠시 생각났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몸으로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올가미를 설치하는 아르젠느의 모습부터가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행위로 말을 했다. <무셰트>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랬다. “14살 소녀 무셰트는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오빠를 돌봐야 하는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소회당한 무셰트는 숲 속을 배회하다 밀렵꾼 아르센에게 겁탈 당한다. 무셰트는 아르센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차갑기만 하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소녀의 수난과 죽음을 소름끼칠 정도로 가슴 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작품의 대한 소개는 단지 소개에 그친다. 우리의 언어는 얼마나 무능력한가. 로베르 브레송은 말했다.

“유성영화가 발견한 것은 침묵이다”
 
<무셰트>는 무성영화와 닮았다. 무성영화는 언뜻 보기에 침묵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유성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무성영화 속 인물들의 시선, 몸짓, 그리고 행동들은 유성영화 속의 대화와 말, 소리와 자막, 글과 서술,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수사들을 압도한다. 영화 속 무셰트는 물속에 빠지기 위해 두 번이나 언덕을 구른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렇듯, 죽음에 이르는 길 또한 아름답지도 쉽지도 않다. 사랑 역시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겠다. 나의 언어 역시 너무도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영화를 보고나서 분위기 좋은 바에 가 칵테일을 마실 계획이었다. 영화의 감상에 젖은 채 자정 즈음의 일요일 저녁을 즐기려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바텐더가 주는 칵테일을 한입에 털어버리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 몹시도 우울했다. 나는 그때의 기분을 단지 우울하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상영시간이 78분밖에 안됐던 영화는 삶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마구 헤집어놨다. 인간은 아직 동물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했다. 같은 종의 행동을 보는 것. 다른 종의 행동을 보는 것. 나와 비슷한 어떤 동물의 행위를 지켜보는 것. 이것은 수백 개의 언어와 수천 개의 수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인간의 행위를 지켜본 어떤 인간은 몹시도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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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bresil 2009/10/07 03:58 # 삭제 답글

    이 글 담아갈 순 없나요?????
  • JNAR 2009/11/26 23:08 #

    댓글이 늦었네요. 당연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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