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이민수’의 태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주인공 ‘이민수’는 어쩌다 보니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져버린 인간이다. 그에게 있어 불안정한 20대의 삶은, 1박2일 동안 TV에서 하는 ‘기아체험24시’와 비슷한 것이다. 그에게는 언제라도 자신을 도와줄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자친구(서지원)가 있으며, 자신을 외손주처럼 생각하여 될 수 있으면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채업자(곰보빵 할아버지)도 알고 있다. 게다가 그는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다. 음악이면 음악, 영화면 영화, 문학이면 문학……. 지적인 면에서 보아도 그는 어느 누구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나쁜 일도 자기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일은 여자나 힘이 약한 남자들에게나 일어난다고 믿는”(p. 398) 이 키 크고 멀쩡한 남자에게 ‘결핍’이나 ‘소외’ 같은 부정적인 낱말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결핍인 부모의 부재, ‘사생아’라는 점은 가진 게 너무 많은 주인공에게 주는 일종의 면죄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 동안 내가 들어왔던 『퀴즈쇼』라는 소설은, 우울하고 답답한 20대를 다룬 소설이었다.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백수인 우리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아니었다. 해답은 결국 ‘작가의 말’에서 나왔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내 연민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동기라면 동기였다.
굳이 말하자면 이 소설을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성장담이고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 김영하, ‘작가의 말’, 『퀴즈쇼』, 문학동네, 2007, p. 462.
소설 『퀴즈쇼』는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성장담이자 연애소설이다. 대한민국 20대의 암울한 현실을 그려낸 대표적인 소설이 아니란 말이다. 『퀴즈쇼』는 그 동안 잘못된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소설 『퀴즈쇼』는 현실의 20대의 모습을 배경으로 삼은, 잘 쓰여진 재미있는 ‘연애소설’일 뿐이다. 현실 속 20대는 소설 속 ‘이민수’처럼 홧김에 알바를 그만 두지 못한다. 소설 속 ‘이민수’처럼 고시원 방값 내는 날을 까먹지도 않는다. 현실의 고단한 20대는, 1.5평 고시원의 방값을 내기 위해 '그깟' 아르바이트 하나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재미로 듣는 거 아니에요. 사실 잘 이해는 안돼요. 그치만 저는 사람은 뭐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이해가 안 돼도 계속 공부하다 보면 민수씨가 해준 얘기 같은 것도 언젠가 이해가 될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들어두는 거예요. 이런, 죄송해요. 열심히 말해주셨는데.”
(……) 그녀는 소주 반잔 가량을 조용히 마시더니 자기 인생에 대해 조금 더 털어놓았다.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 공무원 시험 전문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전 열한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대형 마트에서 포장 일을 하고, 그 일이 끝나면 고시원에 돌아와 아침에 학원에서 공부한 것을 복습하다가 잠든다고 했다. 아버지는 건설회사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 일찍 일을 접었고, 어머니와 형제들은 각각 뿔뿔이 흩어져 전국 각지에서 제 살길을 도모하느라 만나지 못한 지도 이미 여러 해라고 했다.
- 김영하, 『퀴즈쇼』, 문학동네, 2007, pp. 123~124.
바나나와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고, 가끔씩 고기가 먹고 싶을 땐 고시원 옥상에 올라 '화장실에서 씻어온 상추'로 삼겹살을 싸먹는, 이런 ‘옆방녀’야 말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20대의 모습이 아닌가. 이민수는 그런 옆방녀를 그저 ‘정거장에서 만난 친구’로 여긴다. 그는 어차피 “이곳을 떠날 테고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p. 114)니까 말이다. 실제로 그는 고시원도 떠나고 옆방녀도 잊는다. 소설의 마지막, ‘이민수’의 눈엔 이제 장밋빛 미래만이 보일 뿐이다. 언제라도 자신을 도와줄 아름답고, 지적이고, 돈 많고, 능력 있는 여자친구 ‘서지원’과 함께할 미래! 이것이야 말로 연애소설의 아름다운 결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 ‘이민수’에게 구질구질한 ‘고시원’과 ‘옆방녀’는 영원히 안녕이다. 안녕!







덧글
라임 2009/02/20 19:41 # 답글
퀴즈쇼가 출간됐을 때 고시원 쪽방, 불안한 20대를 김영하가 다룬다며 호들갑스러운 홍보가 참 거북했던 기억이 납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정말 읽기가 싫어지는군요ㅎㅎJNAR 2009/02/20 22:36 #
홍보가 너무 과했어요. 그래도 읽어볼만 합니다. 재밌긴 참 재밌습니다.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어요.Jekyll 2009/08/06 17:25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조용히 공감.당고 2009/08/25 18:20 # 답글
바로 어제 읽었는데 정말 공감이에요, 공감. ㅎㅎJNAR 2009/08/29 00:42 #
^^